‘역사(歷史)’라는 19세기 말 서양의 ‘히스토리(History)’를 번역한 말이다. 그 이전 동양에서는 사(史), 감(鑑), 통감(通鑑), 서(書), 기(記) 등의 용어가 사용됐다고 한다.
한자 ‘역(歷)’은 ‘지나온다’, ‘경과한다’는 뜻이고, ‘사(史)’는 기록을 관장하는 사람, 즉 사관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史)라는 한자의 어원은 객관성을 상징하는 중(中)과 기록을 상징하는 수(手)의 합성어로서 “객관적으로 공명정대하게 기록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했다.
전통적인 동양의 역사는 사관이 기록한 기록물로서, 연구자의 자의적 해석을 금기시하고 원전을 충실히 인용함을 중시했다. 자신의 견해는 사론 · 찬(贊) · 안(案) · 평(評)이라는 제목 하에 역사의 기록과 구분해 붙였다.
반면 서양의 히스토리(History)는 저자의 주관적인 서술이 중심을 이루는 학문이어서 종래의 사학과는 그 방법이 크게 다르므로 새로운 번역 용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스어 ‘historia’에서 유래한 ‘히스토리(history)’는 ‘이야기’, ‘지식의 탐구’라는 뜻을 갖고 있다. 히스토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 그 원인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현재’가 아닐까 싶다.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 ‘히스토리’가 필요할 때가 많다.
학창 시절 수업을 듣고 배웠던 역사는 ‘정치사’에 치우쳐 있었다. 나라의 건국과 정치 제도를 암기하는 데 상당수 시간을 할애했다.
그마저도 근현대사는 대부분 빠져 있었다. 광복 이후 현대사는 너무나 정치적이었으므로 누군가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았고, 시험에 나오지도 않았다.
20세기 초반 역사는 더욱 암울하다. 한국의 근대 교육은 ‘항일 운동’에 치우쳐 있다. 우리 힘으로 국권을 되찾았다는 설명을 위해 대다수 시간을 할애한다. 시험도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수많은 항일 단체와 독립 운동사를 외워야 한다.
항일의 역사는 국가적으로 중요하겠으나 그 대가도 크다. 조선시대 역사는 빽빽하게 암기하지만, 그 이후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구멍이 뻥뻥 있는 느낌이다.
한반도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이 미친 영향은 크지만 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어떻게 해서든 그 역할을 축소해서 보려는 노력이 많다.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은 대한민국 사학계의 오래된 논쟁이다.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은 피할 수 없다. 조선은 일본에 의해 망했고, 조선 사람들은 일본인에게 착취당했다. 과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일본은 나쁜 나라가 된다.
선과 악은 스토리의 강한 힘이다. 기억에 오래 남을 수 밖에 없다. 조선은 선(善)하고, 일본은 악(善)하다. 나쁜 일본이 착한 조선을 침탈했다는 사실만 남는다.
선악의 프레임에 함몰되면 ‘힘’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정서에는 강한자는 나쁘고, 약한자는 착하다는 공식이 깔려 있다. 국가를 볼 때도, 개인을 볼 때도 비슷한 사고방식이 작동한다. (가난한 사람은 착할 것이란 선입견도 흔하다 )
일본의 조선 침탈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선악’이 아니라 ‘힘’이다. 조선에 조공을 받치던 섬나라가 어떻게 힘을 키웠는지, 조선은 왜 막을 힘이 없었는지 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국제 정치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선악’보다 ‘힘’이 우선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를 여실히 보여 준다. 한국 사람들은 ’21세기에 어떻게 일이 일어나냐’고 충격을 받지만, 인류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매우 짧다.
한반도에서 ‘친일 프레임’은 너무나 간편하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도 자주 써먹는다. 북에서도 남에서도 자주 그랬다. 자매품으로는 ‘친중 프레임’이 있다.
누구와 친하다는 사실이 나를 지켜주진 못한다. 서울 한복판 광장에서 펄럭이는 성조기는 그래서 더욱 공허하다.
대한민국은 조선의 연장선 같다. ‘예송 논쟁’은 21세기 들어서도 끊이질 않는다. 정치판에선 ‘사화(士禍)’가 빈번하다.
‘탈조선’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