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과 비트코인

10대 시절에는 경제학(經濟學)이라는 학문(學問)에 환상(幻想)이 있었다. 경영학(經營學)과 경제학은 ‘돈’과 관련된 학문이라는 막연한 인상(印象)을 줬다.

‘상경계열에 진학하면 취업이 잘 된다’는 명제(命題)는 취업난(就業難)과 궤를 같이 했다. 구직 활동에 대한 공포(恐怖)는 경제학에 대한 묘한 동경(憧憬) 같은 것을 만들었다.

경제학과에 진학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경제학 수업을 일부 들었다.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따위의 수업(授業)들이었다. 학점은 좋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선 ‘수학을 잘해야겠구나’라는 인상만 남았다.

짦은 경험과 인상으로 남은 ‘경제학’이다. 그 결과는 ‘경제학은 희소성(稀少性)을 전제로 하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자원은 희소하고,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가 핵심이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꿈꾸는 ‘경제적 자유’는 ‘희소성의 속박’에 대한 반발 작용이 아닐까 싶다.

희소성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욕망(慾望)에 비하여 그것을 충족(充足)시켜주는 수단(手段)이 질적(質的)으로나 양적(量的)으로 유한(有限)하여 부족(不足)한 상태(狀態)한 상태’를 말한다.

가난하게 태어난 인간은 늘 ‘부족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욕망을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어긋난 길로 가게 된다.

코인 투자는 결국 ‘부족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물론 일부는 더 큰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부를 불리는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코인 투자에서 큰 돈을 벌어 부동산 등으로 갈아타는 사례가 많은 것을 보면 전자가 더 적합하다고 본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희소성에 따른 고통은 꽤나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코인 투자자가 비트코인 대신 알트코인에 몰두하게 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탈출은 더 요원해지는 게 반복된다.

비트코인(Bitcoin)은 희소한 자원이다. 총 발행량은 2100만 개로 정해져 있다.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왜 ‘2100만 개’라는 숫자를 들고 나왔을까.

금에 대해 검색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2026년 현재 인류가 역사적한 채굴한 금은 약 21만톤이라고 한다. (미국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약 7만톤의 금이 채굴할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21이라는 숫자는 우연히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트코인 백서를 작성할 때부터 금을 염두한 것이 아닐까 싶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는 내러티브는 백서 작성 때부터 깔려 있었던 것 같다.

회의론자들은 비트코인을 금에 비유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낸다. 비트코인 가격이 금 가격의 흐름과 큰 괴리를 그런 시각이 우세해 진다. 비트코인의 미래 가격을 예측할 때 금에 비교하는 것은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다.

금과 비트코인의 확실한 공통점은 ‘희소성’에 있다. 공급량을 임의로 늘리지 못한다는 점이 강력한 유사점이다.

현대 경제 시스템은 국가의 법정 화폐가 무한히 늘어나는 중이다. 이는 원화뿐만 아니라 달러도 피해가지 못하는 현상이다.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로 기준금리를 못하는 딜레마는 전 세계 중앙은행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화폐가 늘어나면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진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할 자산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이 ‘노동할 시간’ 밖에 없다면 시간이 지난할 수록 더 가난해지는 구조다.

가난한 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으로서 ‘비트코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보다는 거래가 쉽기 때문이다. 가난을 탈출하는 수단으로서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빈곤의 탈출은 다른 문제다.

비트코인 투자는 인플레이션에 조금이라도 맞서보려는 작은 시도다. 이는 비트코인의 희소성에서 기인한다.

가난할 수록 알트코인보다는 비트코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