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방송을 보다 우연히 20대 청춘의 인터뷰를 보았다. 감성적이고 공감 가는 가사로 대세로 떠오른 가수였다.

자신의 노래를 몇 구절씩 부르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짧지만 인상 깊었다. 왜 다수의 공감을 받는지 이해가 됐다. 그녀의 음악을 좋아하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결국 나는 자기 혐오와 고통으로 압도된 순간에 그 음악을 찾게 됐다.

노랫말은 ‘용서(容恕)’를 말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 대한 용서였다. 연약한 스스로를 꾸짖지 말고 덮어줄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청춘에 대한 위로가 멜로디를 타고 흘러 나왔다.

보는 이도 없었지만 스스로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이미 청춘을 헛되이 흘러보낸 초라한 모습이 너무나 민망했다. 나는 단단한 청춘들보다 더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았다.

비교는 스스로를 좀 먹는다. 멘탈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더욱더 비교에 집착하게 된다. 지금이 그렇다.

나는 늘 또래보다 늦었다. 대학에 가는 것도 취업을 하는 것도 남들보다 느렸다. 인생의 대부분의 순간에 뒤쳐졌고 불안했다.

어릴 땐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버텼다. 중요한건 ‘속력’이 아니라 ‘방향’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땐 그럴만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나니 쉽지가 않다. 오래 쌓인 시간만큼 되돌리는 것도 어렵다는 무력감이 지배한다. 또래들과 나의 격차는 더욱더 아득해져버렸다.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비교를 하고 있는 스스로는 더욱 더 비참해진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리하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그렇게 설득하는 것처럼 들렸다.

용서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