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6년 2월 2일 12시 14분(뉴욕 시간 기준) ‘케빈 워시는 스탠리 드러켄밀러와 함께 일하며 무엇을 배웠는가?(‘What Kevin Warsh Learned Working for Stanley Druckenmiller’ )’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한국 시간으로는 2026년 2월 3일 오전 2시 14분이었다.
연협뉴스는 약 3시간 뒤인 2026년 2월 3일 5시 12분 ‘차기연준의장 워시 지명에 ‘막후 경제실세’ 드러켄밀러 주목’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뉴욕 특파원이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번역한 내용을 토대로 썼다. (2026년 2월 3일 한국의 낮시간 내내 한국의 언론은 비슷한 맥락의 기사들을 쏟아내게 된다)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를 운용한 인물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과거 드러켄밀러 밑에서 일했다.
케빈 워시는 드러켄밀러의 개인 자산을 굴리는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 출신이다. 따라서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게 요지다.
그의 투자 철학을 알고 있으면 향후 미 연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분석이다.
드러켄밀러는 오래전부터 과도한 재정적자와 부채에 비판적이었다. 물가 상승을 통제하기 위해선 폴 볼커 전 Fed 의장이 보여준 확고한 정책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볼커는 1980년대 미국의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0%까지 높인 인물이다.
스탠리 드러켄밀러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는 미국(U.S.)의 대표적인 매크로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억만장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53년 6월 14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 인근에서 태어났다. 국적은 미국이다.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는 듀케인 캐퍼틸(및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 설립자다.
커리어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는 보든 칼리지(Bowdoin College)를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더 공부하려고 했으나, PNC 파이낸셜(Pittsburgh National Bank/PNC Financial)에 스카우트되어 금융권에 진입했다.
1977년 PNC 파이낸셜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해 1년 만에 리서치 부서장(헤드)까지 올랐다.
1981년 자신만의 헤지펀드인 듀케인 캐피털 매니지먼트(Duquesne Capital Management)를 설립했다. 이후 드뤠피스(Dreyfus Corporation)에서 컨설턴트·펀드매니저로 활동하며 피츠버그와 뉴욕을 오가다가, 1986년에는 드뤠피스 펀드의 펀드매니저로 승진했다.
1988년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퀀텀 펀드(Quantum Fund)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리드 매니저)로 합류했다.
1992년 ‘블랙 웬즈데이(Black Wednesday)’로 불리는 영국 파운드화 폭락 국면에서, 소로스와 함께 파운드화 공매도를 주도해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사나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퀀텀펀드를 운용하던 시기(1988~2000년)에는 연평균으로도 매우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헤지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듀케인 운용 기간 동안 약 30년 가까이 연평균 30% 수준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손실을 낸 해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경 외부 자금 운용을 종료하고, 이후 가족 자산을 운용하는 패밀리 오피스 형태(듀케인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해 사실상 헤지펀드 업계에서는 은퇴한 상태로 평가된다.
투자 스타일 & 철학
- 글로벌 매크로 전략: 거시경제(금리, 통화, 경기 사이클, 정책)를 바탕으로 통화·채권·주식·파생상품을 넘나드는 포지션을 취하는 매크로 트레이더로 유명하다.
- 대형 베팅·집중 투자: 확신이 생기면 소수 아이디어에 자금을 크게 배팅하는 성향을 강조하며, 분산보다 집중투자를 선호하는 발언을 한적이 있다.
- 리스크 관리: 손실을 빨리 인정하고 포지션을 정리하는 것을 중시하며, “틀렸다고 생각되면 바로 잘라라”는 식의 원칙으로도 자주 인용된다.
최근에는 미국의 재정 적자와 유동성 확대에 따른 인플레이션, 금·달러 자산, AI·기술주에 대한 관점을 통해 여전히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