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파운드화 공매도(이른바 ‘블랙 웬즈데이’)는 유럽환율메커니즘(ERM) 하에서 과대평가된 파운드화에 대해 거대 헤지펀드·투기자본이 공매도 포지션을 집중적으로 쌓아 올렸고, 결국 영국 정부가 방어를 포기하고 ERM 탈퇴를 선언하면서 파운드가 급락한 사건이다. 조지 소로스가 약 10억 파운드(약 10억 달러 이상)의 이익을 거두면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wikipedia+3
사건의 배경: ERM 가입과 과대평가 논쟁
영국은 1990년 10월 독일 마르크를 기축으로 한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 참가했고, 파운드화는 1파운드=2.95 독일 마르크 수준, 하단은 2.773마르크로 고정된 밴드 내에서 움직이도록 규정되었다. 이는 반(半)고정환율제를 택한 것으로, 환율이 하단에 접근하면 영란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외환시장에 개입해 파운드를 매수해야 했다.econ.economicshelp+1
문제는 영국 경제 여건이 독일과 크게 달랐다는 점이다. 독일은 통일 이후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에 맞춰 ERM에 묶인 영국도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영국은 부동산 거품 붕괴와 경기 둔화로 이미 침체에 들어가 있었고, 높은 금리는 내수와 투자를 더 위축시켜 경기 하강을 심화시켰다.etonomics+1
또한 영국의 경쟁력은 독일에 비해 낮았고, 영국은 독일로부터 수입이 많아 마르크에 대한 구조적 수요가 존재했다. 이는 파운드/마르크 환율에 하향 압력을 가했고, 시장에서는 “파운드가 ERM 기준으로 과대평가되어 있으며, 결국 평가절하나 탈퇴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econ.economicshelp+1
투기적 공매도 포지션의 형성
이러한 상황에서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퀀텀 펀드는 파운드가 ERM 밴드 상단에 비해 본질적으로 과대평가되어 있으며, 영국이 독일 수준의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환율이 하단을 위협할 경우 영국 정부는 선택을 강요받는다.wikipedia+2
- 금리를 극단적으로 올려 경기 침체를 감수하며 방어
- 또는 파운드 평가절하·ERM 탈퇴를 선언하고 환율을 시장에 맡김
소로스는 후자가 현실적 선택이라고 보고 파운드에 대한 공매도(숏) 포지션을 구축했다. 공매도의 기본 구조는 다음과 같다.mondfx+2
- 파운드를 차입해 즉시 시장에서 매도
- 이후 파운드 가치가 하락하면 더 낮은 가격에 파운드를 다시 매수
- 차입했던 파운드를 상환하고, 매도·매수 차익을 이익으로 확보
퀀텀 펀드는 1992년 여름부터 서서히 파운드를 빌려 매도하며 포지션을 키웠고, 9월 16일 ‘블랙 웬즈데이’ 시점에는 약 10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 숏 포지션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헤지펀드와 투기적 자금도 뒤따라 파운드 공매도에 가세하면서, 시장에는 거대한 일방향 매도 압력이 형성되었다.ig+5
1992년 9월 16일: 블랙 웬즈데이 전개
1992년 9월 16일 수요일, 파운드에 대한 매도 주문이 런던·프랑크푸르트·뉴욕 시장에서 집중되며 ERM 하단선이 뚫릴 위기에 처했다. 영란은행과 영국 재무부는 파운드를 방어하기 위해 두 가지 조치를 동원했다.wikipedia+2
-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
- 영란은행은 보유 외환준비를 사용해 파운드를 직접 매수하며 환율을 지지하려 했다.news.sky+1
- 그러나 투기적 매도 물량이 워낙 컸기 때문에, 파운드를 사들일수록 더 많은 매도세가 유입되는 ‘끝이 안 보이는 싸움’이 이어졌다.mondfx+1
- 공격적 금리 인상 발표
- 오전 10시 30분경, 기준금리를 10%에서 12%로 인상한다고 발표해 파운드 보유 유인을 높이고, 숏 포지션을 보유한 투자자에게 부담을 주려 했다.etonomics+1
- 시장 반응이 미미하자, 오후 2시 15분에는 다음 날부터 금리를 15%까지 추가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econ.economicshelp+1
- 그러나 시장은 이런 급격한 금리 인상을 “지속 불가능한 궁여지책”으로 간주했고, 영국 경제가 이미 침체 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etonomics+1
이 시점에서 소로스는 이미 공매도 포지션을 100억 달러 수준까지 확대했고, 다른 투기자금도 “영국 정부가 결국 굴복할 것”이라고 보고 계속 파운드를 매도했다. BBC,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등 주요 언론이 실시간으로 금리 인상과 개입 소식을 전하면서 시장의 불안 심리는 더 증폭되었고, 일반 투자자들까지 파운드 매도에 나섰다.theeconreview+4
영국 정부는 하루 동안 막대한 외환준비를 소진하면서도 환율 방어에 실패했다. 결국 긴급 각료회의 후, 존 메이저 정부는 ERM 고정환율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priceonomics+3
ERM 탈퇴와 파운드 평가절하, 소로스의 이익
9월 16일 저녁, 재무장관 노먼 래먼트는 영국이 ERM에서 탈퇴하고 파운드를 시장에서 자유변동시키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울러 금리를 15%까지 올리겠다는 계획도 철회하고 다시 낮추겠다고 밝혔다.priceonomics+3
- ERM 탈퇴 직후 파운드는 독일 마르크 대비 약 10~15%, 미국 달러 대비 약 20~25% 정도 가치가 하락했다.scirp+2
- 이후 몇 주 동안 파운드는 추가 하락을 거쳐 저점을 형성했고, 결과적으로 9월 전후 몇 주 사이에 달러 대비 약 25%가량 급락한 것으로 평가된다.priceonomics+1
파운드가 급락하자, 소로스를 비롯한 공매도 세력은 낮아진 환율에서 파운드를 다시 매수해 차입분을 상환함으로써 막대한 차익을 실현했다. 소로스의 퀀텀 펀드는 이 거래로 약 10억 파운드, 달러 기준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이익을 올린 것으로 보도되며 “영란은행을 무릎 꿇린 남자”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investopedia+4
반대로 영란은행과 영국 정부는 파운드 방어를 위해 사용한 외환준비 손실과 신뢰도 훼손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 초기에는 손실이 130억 파운드에 이른다는 추정이 있었으나, 2005년 공개 문서에 따르면 실제 순손실은 약 33억 파운드 수준으로 정정되었다.[scirp]
- 그럼에도 당시 기준으로 매우 큰 금액이었고, 보수당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reddit+1
경제적·정책적 파장
블랙 웬즈데이는 단기적으로는 영국 정부와 파운드의 신뢰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아이러니한 결과도 낳았다.scirp+2
- 통화정책 체계의 변화
- 영국은 ERM 탈퇴 후 환율 목표를 포기하고 직접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도입했다.[econ.economicshelp]
- 1997년에는 영란은행의 독립성이 강화되어, 정치권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통화정책 운용 체제가 구축되었다.[econ.economicshelp]
- 이는 1980년대의 경기 과열과 붕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해된다.[econ.economicshelp]
- 유로화·통합 논의에 미친 영향
- 거시경제에 대한 효과
- 파운드 가치 하락과 금리 인하가 가능해지자, 수출 경쟁력이 개선되고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etonomics+1
- 초기에는 위기로 인식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영국 경제가 고정환율의 족쇄에서 벗어나 보다 탄력적인 환율·금리 정책을 활용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etonomics+1
공매도의 의미와 교훈
1992년 파운드화 공매도 사건은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정책에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wikipedia+3
- 고정환율제의 취약성
- 기초 여건(경기, 인플레이션, 경쟁력)이 다른 국가들이 공통의 환율 밴드에 묶여 있을 경우, 정책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고 투기 공격의 표적이 되기 쉽다.etonomics+2
- 특히 경기침체 국가에 고금리가 강제되면, 정치·사회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 투기세력과의 ‘치킨 게임’이 지속된다.econ.economicshelp+1
- 투기자본의 역할
- 공매도 세력은 정부가 유지하려는 ‘정책적 환율’과 시장이 생각하는 ‘균형 환율’의 괴리를 이윤의 원천으로 활용한다.wikipedia+2
- 이들이 항상 “악당”이라고만 보기는 어렵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고정환율 체제를 붕괴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논쟁적 평가도 존재한다.mondfx+1
- 정책 신뢰와 커뮤니케이션
- 영국 정부는 금리 인상과 개입으로 강력한 방어 의지를 표명했지만, 시장은 이를 일관된 중장기 전략이 아닌 단기적 버티기로 해석했다.etonomics+1
- 정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일시적인 강경 조치만으로는 거대 자본의 공격을 막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econ.economicshelp+1
- 위험관리의 중요성
- 중앙은행 측면에서는 외환보유액과 금리 정책만으로 투기적 공격에 대응할 때의 한계를 드러냈고, 이후 여러 국가들이 유사 상황에 대비해 외환보유고를 확대하거나 자본이동 규제를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scirp]
- 투자자 입장에서는 레버리지를 활용한 공매도가 얼마나 큰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지, 그러나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얼마나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교과서에 인용된다.theeconreview+1
정리
1992년 파운드화 공매도 사건은 ERM 체제 하에서 기초 여건과 맞지 않는 고정환율을 유지하려 한 영국 정부와, 이를 간파하고 파운드 숏 포지션을 공격적으로 구축한 투기자본 간의 대결이었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ERM을 탈퇴하고 파운드를 평가절하했으며, 소로스를 비롯한 공매도 세력은 거대한 이익을 거둔 반면, 영란은행은 수십억 파운드의 손실과 정책 신뢰도 훼손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동시에 이 사건은 고정환율제의 위험, 투기자본의 힘, 그리고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인플레이션 타기팅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게 만든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다.investopedi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