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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충수

    자충수(自充手)는 바둑 용어다. 바둑에서 자기의 수를 줄이는 돌을 말한다. 일상에선 스스로 한 행동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을 비유한다. 자업자득(自業自得)과 비슷한 의미다.

    짧지 않은 삶 속에서 자충수를 반복해 온 자가 있다. 그 긴 이야기를 들어줄 인내심이 강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타인이 들으면 이해도 되지 않고 어이가 없을듯 싶다. 도리어 우습고 한심한 인생일 따름이다.

    자충수를 거듭하다보면 막다른 길을 마주할 때가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이 그렇다. 살면서 한심한 선택들을 반복해왔다. 그 결과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런 순간에 인간은 압도적인 무력감을 느낀다.

    부정적 기운을 뿜어내는 인간을 반길 사람은 업다. 골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다. 그 뿐이다. 말 할 수 없으니 타이핑라도 해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든다.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될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지푸라기를 잡았던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다 ‘조울증(躁鬱症)’이라는 병명이 가슴에 박힌다. 흥분과 우울이 교대로 나타나는 병이다. 조현병(調絃病)과 함께 2대 정신병이라는 설명도 붙는다.

    잘못된 선택의 배경에는 ‘회피’가 늘 존재했다. 현실을 바로보지 못한 탓이다. 맨 눈으로 현실을 마주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눈을 멀게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비난과 책임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면 ‘회피’가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비난받고 이를 책임지고 수습해야 한다. 그러면 순리대로 간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앞을 제대로 봐야 한다. 무언가를 회피하고 있다면 더 큰 화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 양자 컴퓨터는 비트코인을 파괴할까

    구글(Google)은 2026년 3월 31일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로 비트코인(Bitcoin)을 해킹(hacking)할 수 있다’는 백서(white paper)를 발표1했다. 빠르면 3년 내 위협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서에 따르면 비트코인 해킹에는 약 50만 개의 물리 큐비트(Qubit)면 충분하다고 한다. 큐비트는 양자(量子) 상태를 활용한 정보 처리 단위를 말한다. 그동안에는 수백만개의 이상의 큐비트가 필요하다는 게 정설(定說)이었다.

    백서는 “양자 내성 암호화(post-quantum cryptography, PQC)로 블록체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크립토 커뮤니티에 제시했다. 그러면서 “코인베이스(Coinbase), 스탠포드 블록체인 연구소(Stanford Institute for Blockchain Research), 이더리움 재단(Ethereal Foundation)등 다른 기관과 협력을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양자 저항 암호화(PQC)는 양자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중 하나로 제시됐다. 이를 구현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조속한 조치가 시급하다는 내용이 백서에 담겼다. 취약한 지갑 주소를 노출하거나 재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크립토를 처리하는 정책 방안 등도 검토돼야 한다고 한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기술적 논의는 차지(且置)하고, 이번에 발표된 백서의 뉘앙스(nuance)를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편적으로는 “비트코인이 양자 컴퓨터로 위협을 받는다”에 그치지만, 그 이면에는 이를 미리 대비하자는 의도가 더 크게 다가온다. “비트코인이 해킹으로 폭싹 주저 앉을 것이다”라는 예언은 아니라는 의미다.

    백서의 큰 틀은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한 경고와 이를 대비하자는 조언 수준으로 들린다.

    백서와 관련된 국내 뉴스 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댓글이 있었다. “비트코인이 해킹당하기 전에 금융 전산망이 작살난다”는 내용이었다. 가장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미래(未來)는 늘 알 수가 없다. 예측 가능한 위협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도 많다. 진짜 위험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하곤 한다.

    예측(豫測)조차 하지 못한 미래가 가장 위협적이다.

    1. https://research.google/blog/safeguarding-cryptocurrency-by-disclosing-quantum-vulnerabilities-responsibly/ ↩︎

  • 에이아이는 검색 시장을 잠식할까

    사람들이 에이아이(AI)를 사용하는 시간(時間)과 빈도(頻度)가 늘고 있다. 에이아이 서비스(service)가 더 많은 트래픽(traffic)을 가져갈 수 있다는 의미다. 트래픽은 곧 경제적 이익(經濟的 利益)과 직결(直結)된다.

    현재 검색 시장(檢索 市場)은 구글(google)이 지배적(支配的)인 사업자(事業者)다. 한국 시장(韓國 市場)은 여전히 네이버(naver)가 가장 큰 비중(比重)을 차지(次知)한다.

    2026년 현재까지는 검색 시장이 급속(急速)하게 축소(縮小)되는 현상(現象)이 나타나진 않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꽤 많은 정보(情報)를 검색하고 있다. 당장에 검색 광고 시장에 위기(危機)가 찾아오진 않을듯 하다.

    짧은 생각으로는 라디오(radio)와 텔레비전(television) 방송(放送)의 관계(關係)가 떠올랐다. 1920년 미국 피츠버그(Pittsburg)에서 세계 최초의 상업 방송국인 케이디케이에이(KDKA)가 개국(開國)했다.

    세계 최초의 정규 텔레비전 방송국은 독일의 ‘페른제젠더 파울 니프코프(Fernesender Paul Nipkow)’였다. 1935년 3월 22일 독일 베를린(Berlin)에서 개국했다.

    방송국의 등장을 기준으로 보면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시차(時差)는 15년쯤 됐다. 라디오의 보급 속도와 텔레비전의 보급 속도를 고려하면 대중화되는 시차는 좀 더 벌어졌을테다.

    2000년대 들어 대중화(大衆化)한 인터넷 검색 시장과 2020년대 들어 폭발적인 수요를 보이는 에이아이 서비스는 약 20년의 시차를 두고 있다.

    2026년 현재에도 라디오 시장은 여전히 살아 있다. 버글스가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를 발표한 게 1979년이었다. 세상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던 라디오는 진화(進化)했다. 디지털화되고 인터넷 속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도로 위에 자동차에서도 여전히 라디오는 흘러나온다.

    에이아이 서비스의 확장은 검색 시장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하지만 검색 시장이 소멸(消滅)할지는 의문(疑問)이다.

    검색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들이 검색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세기의 라디오처럼 21세기의 검색 시장이 변해갈지 지켜볼 일이다.

  • 경제학과 비트코인

    10대 시절에는 경제학(經濟學)이라는 학문(學問)에 환상(幻想)이 있었다. 경영학(經營學)과 경제학은 ‘돈’과 관련된 학문이라는 막연한 인상(印象)을 줬다.

    ‘상경계열에 진학하면 취업이 잘 된다’는 명제(命題)는 취업난(就業難)과 궤를 같이 했다. 구직 활동에 대한 공포(恐怖)는 경제학에 대한 묘한 동경(憧憬) 같은 것을 만들었다.

    경제학과에 진학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경제학 수업을 일부 들었다.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따위의 수업(授業)들이었다. 학점은 좋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선 ‘수학을 잘해야겠구나’라는 인상만 남았다.

    짦은 경험과 인상으로 남은 ‘경제학’이다. 그 결과는 ‘경제학은 희소성(稀少性)을 전제로 하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자원은 희소하고,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가 핵심이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꿈꾸는 ‘경제적 자유’는 ‘희소성의 속박’에 대한 반발 작용이 아닐까 싶다.

    희소성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욕망(慾望)에 비하여 그것을 충족(充足)시켜주는 수단(手段)이 질적(質的)으로나 양적(量的)으로 유한(有限)하여 부족(不足)한 상태(狀態)한 상태’를 말한다.

    가난하게 태어난 인간은 늘 ‘부족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욕망을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어긋난 길로 가게 된다.

    코인 투자는 결국 ‘부족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물론 일부는 더 큰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부를 불리는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코인 투자에서 큰 돈을 벌어 부동산 등으로 갈아타는 사례가 많은 것을 보면 전자가 더 적합하다고 본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희소성에 따른 고통은 꽤나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코인 투자자가 비트코인 대신 알트코인에 몰두하게 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탈출은 더 요원해지는 게 반복된다.

    비트코인(Bitcoin)은 희소한 자원이다. 총 발행량은 2100만 개로 정해져 있다.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왜 ‘2100만 개’라는 숫자를 들고 나왔을까.

    금에 대해 검색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2026년 현재 인류가 역사적한 채굴한 금은 약 21만톤이라고 한다. (미국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약 7만톤의 금이 채굴할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21이라는 숫자는 우연히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트코인 백서를 작성할 때부터 금을 염두한 것이 아닐까 싶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는 내러티브는 백서 작성 때부터 깔려 있었던 것 같다.

    회의론자들은 비트코인을 금에 비유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낸다. 비트코인 가격이 금 가격의 흐름과 큰 괴리를 그런 시각이 우세해 진다. 비트코인의 미래 가격을 예측할 때 금에 비교하는 것은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다.

    금과 비트코인의 확실한 공통점은 ‘희소성’에 있다. 공급량을 임의로 늘리지 못한다는 점이 강력한 유사점이다.

    현대 경제 시스템은 국가의 법정 화폐가 무한히 늘어나는 중이다. 이는 원화뿐만 아니라 달러도 피해가지 못하는 현상이다.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로 기준금리를 못하는 딜레마는 전 세계 중앙은행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화폐가 늘어나면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진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할 자산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이 ‘노동할 시간’ 밖에 없다면 시간이 지난할 수록 더 가난해지는 구조다.

    가난한 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으로서 ‘비트코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보다는 거래가 쉽기 때문이다. 가난을 탈출하는 수단으로서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빈곤의 탈출은 다른 문제다.

    비트코인 투자는 인플레이션에 조금이라도 맞서보려는 작은 시도다. 이는 비트코인의 희소성에서 기인한다.

    가난할 수록 알트코인보다는 비트코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