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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ID와 명예훼손
리프킨은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의 자기표현은 본질적으로 연극적이며, 표면 연기와 심층 연기로 이루어진다고 언급했다. 표면 연기는 내면의 자연스러운 감정보다 의례적인 표현과 같은 형식에 집중하여 연기하는 것이고, 심층 연기는 내면의 솔직한 정서를 불러내어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한 리프킨은 가상 공간에서 자기 표현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가상 공간의 특성에 주목한 연구자들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존재로서의 위상을 뜻하는 자기 정체성이 가상 공간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가상 공간에서는 익명성이 작동하므로 현실에서 위축되는 사람도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다. 아울러 현실에서의 자기 정체성을 감추고 다른 인격체로 활동하거나 현실에서 억압된 정서를 공격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게임 아이디, 닉네임, 아바타 등 가상 공간에서 개별적 대상으로 인식되는 ‘인터넷 ID’에 대한 사이버 폭력이 넘쳐 나는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이버 폭력과 관련한여, 인터넷 ID만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해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의 공격이 있을 때 가해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다. 이는 인터넷 ID가 사회적 평판인 명예의 주체로 인정될 수 있는가와 관련된다. 인터넷 ID의 명예 주체성을 인정하는 입장에 따르면, 자기 정체성은 일원적•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와 가상 공간에 걸쳐 존재하고 상호 작용하는 복합적인 것이다. 인터넷에서의 자기 정체성은 사용자 갱니의 자기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기 정체성을 가진 인터넷 ID의 명예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반면 인정하지 않는 입장에 따르면, 생성• 변경• 소멸이 자유롭고 복수로 개설이 가능한 인터넷 ID는 그 사용자인 개인을 가상 공간에서 구별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인터넷 ID는 현실에서의 성명과 달리 그 사용자인 갱니과 동일시될 수 없고, 인터넷 ID 자체는 사람이 아니므로 명예 주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실명을 거론한 경우는 물론,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더라도 주위 사정을 종합할 때 지목된 사람이 누구인지를 제3자가 알 수 있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대한 가해자의 법적 책이미 성립한다고 판시해 왔다. 이를 수용한 헌법재판소에서는 인터넷 ID와 관련된 명예훼손•모욕 사건의 헌법 소원에 대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결정에서 다수 의견은 인터넷 ID만을 알 수 있을 뿐 그 사용자가 누구인지 제3자가 알 수 없다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대한 가해자의 법적 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반면 인터넷 ID는 가상 공간에서 성명과 같은 기능을 하므로 제3자의 인식 여부가 법적 책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소수 의견도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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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 모델
문장이나 영상, 음성을 만들어 내는 인공 지능 생성 모델 중 확산 모델은 영상의 복원, 생성 및 변환에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 확산 모델의 기본 발상은, 원본 이미지에 노이즈(noise)를 점진적으로 추가하였다가 그 노이즈를 다시 제거해 나가면 원본 이미지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이즈는 불필요하거나 원하지 않는 값을 의미한다. 원하는 값만 들어 있는 원본 이미지에 노이즈를 단계별로 더하면 노이즈가 포함된 확산 이미지가 되고, 여러 단계를 거치면 결국 원본 이미지가 어떤 이미지였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노이즈 이미지가 된다. 역으로, 단계별로 더해진 노이즈를 알 수 있다면 노이즈 이미지에서 원본 이미지를 복원할 수 있다. 확산 모델은 노이즈 생성기, 이미지 연산기, 노이즈 예측기로 구성되며, 순확산 과정과 역확산 과정 순으로 작동한다.
순확산 과정은 이미지에 노이즈를 추가하면서 노이즈 예측기를 학습시키는 과정이다. 첫 단계에서는, 노이즈 생성기에서 노이즈를 만든 후 이미지 연산기가 이 노이즈를 원본 이미지에 더해서 노이즈가 포함된 확산 이미지를 출력한다. 다음 단계붙터는 노이즈 생성기에서 만든 노이즈를 이전 단계에서 출력된 확산 이미지에 더한다. 이러한 단계를 충분히 반복하면 최종적으로 노이즈 이미지가 출력된다. 이때 더해지는 노이즈는 크기나 분포 양상 등 그 특성이 단계별로 다르다. 따라서 노이즈 예측기는 단계별로 확산 이미지를 입력받아 이미지에 포함된 노이의 특성을 추출하여 수치들로 표현하고, 이 수치들을 바탕으로 노이즈를 예측한다. 노이즈 예측기 내부의 이러한 수치들을 잠재 표현이라고 한다. 노이즈 예측기는 잠재 표현을 구하고 노이즈를 예측하는 방식을 학습한다.
노이즈 예측기의 확습 방법은 기계 학습 중에서 지도 학습에 해당한다. 지도 학습은 학습 데이터에 정답이 주어져 출력과 정답의 차이가 작아지도록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법이다. 노이즈 예측기를 학습시킬 때는 노이즈 생성기에서 만들어 넣어 준 노이즈가 정답에 해당하며 이 노이즈와 예측된 노이즈 사이의 차이가 작아지도록 학습시킨다.
역확산 과정은 노이즈 이미지에서 노이즈를 제거하여 원본 이미지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노이즈를 제거하려면 이미지에 단계별로 어떤 특성의 노이즈가 더해졌는지 알아야 하는데 노이즈 예측기가 이 역할을 한다. 노이즈 이미지 또는 중간 단계에서의 확산 이미지를 노이즈 예측기에 입력하면 이미지에 포함된 노이즈의 특성을 추출하여 잠재 표현을 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이즈를 예측한다. 이미지 연산기는 입력된 확산 이미지로부터 이 노이즈를 빼서 현 단계의 노이즈를 제거한 확산 이미지를 출력한다. 확산 이미지에 이런 단계를 반복하면 결국 노이즈가 대부분 제거되어 원본 이미지에 가까운 이미지만 남게 된다.
한편, 많은 종류의 이미지를 학습시킨 후 학습된 이미지의 잠재 표현에 고유 번호를 붙이면 역확산 과정에서 이미지를 선택하여 생성할 수 있다. 또한 잠재 표현의 수치들을 조정하면 다른 특성의 노이즈가 생성되어 여러 이미지를 혼합하거나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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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를 위한 과학
서양의 과학과 기술, 천주교의 수용을 반대했던 이항로를 비롯한 척사파의 주장은 개항 이후에도 지속되었지만, 개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개물성무와 화민성속의 앞 글자를 딴 개화는 개항 이전에는 통치자의 통치 행위로서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지식 확장과 피통치자에 대한 교화를 의미했다.
개항 이후 서양 문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서양 문명의 숭요을 뜻하는 개화 개념이 자리 잡았다. 임오군란 이후, 고종은 자강 정책을 추진하면서 반서양 정서의 교정을 위해 한성순보를 발간했다. 이 신문의 개화 개념은 서양 기술과 제도의 도입을 통한 인지의 발달과 풍속의 진보를 뜻했다. 이 개념에는 인민이 국가의 독립 주권의 소중함을 깨닫는 의식의 변화가 내포되었고, 통치자의 입장에서 수용 가능한 문명의 장점을 받아들여 국가의 진보를 달성한다는 의미도 담겼다.
개화당의 한 인사가 제시한 개화 개념은 성문화된 규정에 따른 대민 정치에서의 법적 처리 절차 실현 등 서양 근대 국가의 통치 방식으로서의 변화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그는 개화 실행 주체를 여전히 왕으로 생각했고, 개화 실행 주체로서 왕의 역할이 사라진 것은 갑신정변에서였다. 풍속의 진보와 통치 방식 변화라는 의미를 내포한 갑신정변의 개화 개념은 통치권에 대한 도전으로뿐 아니라 개인의 사욕을 위한 것으로 표상되었다. 이후 개화 개념은 국가 구성원을 조직하고 동원하기 위해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저술하며 개화 개념에 덧씌원진 부정적 이미지를 떼어 내고자 했다. 이후 간행된 대한매일신보 등의 개화 개념은 국가 구성원 전체를 실행 주체로 하여 근대 국가 주권을 향해 그들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것을 의미했다.
을사늑약 이후, 개화 논의는 문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로 이어졌다. 대한 자강회의 주요 인사들은 서양 근대 문명을 수용하여 근대 국가를 건설하고자, 앞서 문명활르 이룬 일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서양 근대 문명의 주체를 주체 인식의 준거로 삼았기 때문에 민족 주체성을 간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은식은 근대 국가 건설과 새로운 주체의 형성에 주목하여 문명에 대한 견해를 제시했다. 그의 기본 전략은 문명의 물질적 측면인 과학은 서양으로부터 수용하되, 문명의 정신적 측면인 철학은 유학을 혁신하여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생존과 편리 증진을 위해 과학 연구가 시급하지만, 가치관 정립과 인격 수양을 위해 철학 또한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자국 철학 전통의 정립이라는 당시 동아시아의 사상적 흐름 속에서 그가 제시한 근대 주체는 과학적 • 철학적 인식의 주체이자 실처적 도덕 수양의 주체로서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중국이 서양의 과학과 기술에 전면적인 관심을 기울인 때는 아편 전쟁 이후였다. 전쟁 패배에 따른 위기감은 반세기에 걸쳐 근대화의 추진과 함께 의욕적인 기술 수용으로 이어졌찌만, 청일 전쟁의 패배는 기술 수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을 낳았다. 이에 따라 20세기 초반 진정한 근대를 이루기 위해 기술 배후에서 작용하는 과학 정신을 사회 전체에 이식하려는 시도가 구체화되었다.
옌푸는 국가 간에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경쟁을 부각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기술뿐 아니라 국민의 정신적 자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정신적 자질 중 과학적 사유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파악한 그에게 과학 정신이 전제되지 않은 정치적 변혁은 뿌리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인과 실증의 방법에 근거한 근대 학문 전체를 과학이라 파악하고, 과학을 습득하여 전통 학문의 폐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입장은 1910년대 후반 신문화 운동을 주도한 천두슈에게 이어졌다.
천두슈를 비롯한 신문화 운동의 지식인들은 과학의 근거 위에서만 민주 정치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달성해야 할 신문화는 과학 및 과학의 방법에 근거한 문화라 보고, 신문화를 이루기 위해 전통문화 전반에 대해 철저한 부정과 비판을 시도했다. 사상이나 철학이 과학의 방법을 이용하지 않으면 공상에 그칠 뿐이라고 주장한 천두슈는 사회와 인간의 삶에 대한 연구도 과학의 연구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비극은 과학을 이용해 저지른 죄악의 결과일 뿐 과학 자체의 죄악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과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지속했다.
한편,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을 시찰했던 장쥔마이는 통제되지 않은 과학이 불러온 역작용을 목도한 후, 과학이 어떻게 발달하든 그것이 인생관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서양 근대 문명을 비판했다. 근대 과학 문명에서 초래된 사상적 위기가 주체의 책임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란느 주장에 동의했던 그는 과학적 방법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인생관이 문제에는 과학적 방법이 적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생관을 과학과 별개로 파악했고, 과학만능주의에 기초한 신문화 운동에 의해 부정된 중국 전통 가치관의 수호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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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팽창
열팽창(熱膨脹)이란 물체(物體)의 온도 변화에 따라 그 길이, 부피가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중 길이의 변화를 수치화(數値化)한 것이 선형 열팽창 계수인데, 이는 온도 변화에 따른 길이 변화율(變化率)을 온도 변화량으로 나눈 값이다. 여기에서 길이 변화율은 길이와 변화량을 처음 길이로 나누어 얻는 값이며, 변화량이란 나중 값에서 처음 값을 뺀 것이다. 대부분의 물질은 선형 열팽창 계수가 양수이며 물질마다 그 값이 다르다. 합금인 인바(invar)와 순수한 금속인 알루미늄은 선형 열팽창 계수가 양수인 물질이며 인바는 알루미늄에 비해 매우 작은 선형 열챙창 계수를 갖는다.
선형 열챙창 계수가 다른, 두 종류의 물질 P와 Q를 서로 같은 두께의 두 층으로 접합하여 평평한 띠를 만든다고 하자. 이 때 Q가 P보다 선형 열팽창 계수가 크다면 온도를 올렸을 때 Q층은 P층보다 더 팽창하려고 한다. 그러나 두 층이 접합되어 있어 독립적인 팽창이 억제되므로, 띠가 P층 쪽으로 원의 호 형태로 휘면서 팽창한 후 그 상태를 유지한다. 이후 다시 처음의 온도로 내리면 띠는 원래 모양으로 돌아온다.
물체의 휨의 정도는 곡률로 수치화할 수 있는데, 띠 또한 휨에 정도를 곡률로 나타낸다. 띠의 길이에 비해 두께가 매우 얇고 폭이 좁아 띠를 하나의 곡선이라고 간주하면, 띠를 원의 호로 생각할 수 있다. 이때 이 원의 호를 포함하는 원의 반지름을 휘어진 띠의 곡률 반지름이라 하는데, 곡률은 이 곡률 반지름의 엯루이다. 즉, 곡률 반지름이 작을수록 더 심하게 휘어진 것이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두 물질의 선형 열팽창 계수 차이가 크거나 온도 변화가 클수록 띠가 더 휘어진다. 온도 변화량이 같아도 띠를 이루는 물질에 따라 휘는 정도는 달라진다. 이를 나타내는 것이 휨 민감도이다. 휨 민감도가 더 크다는 것은 같은 온도 변화량에서 띠가 더 심하게 휨을 의미한다.
띠의 한쪽 끝을 고정하고 열을 가하면 띠가 휘면서 반대쪽 끝이 움직이는 액추에이터가 된다. 액추에이터(actuator)란 열에너지 들을 기계적 동작으로 변환하는 장치로, 액추에이터의 설계에는 최대 이동 거리, 띠가 외부에 가할 수 있는 힘, 반응 완료 시간 등이 고려된다.
띠가 휠수록 고정되지 않은 끝의 이동 거리는 커진다. 최대 이동 거리는 휨을 방해하는 외부의 힘이 없다고 가정할 때, 주어진 온도 변화량에서 띠의 끝이 최대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이다. 이 값은 띠의 길이에 따라 달라진다. 띠가 휘면서 띠의 끝이 외부에 힘을 가할 수 있는데, 이 힘은 띠의 끝이 최대 이동 거리에 도달하여 휨이 완료되었을 때 소멸된다.
따라서 띠가 외부에 가할 수 있는 힘이 소멸되는 시점은 최대 이동 거리에 도달했을 때이고, 이는 띠가 휘는 과정에서 최대의 곡률에 도달했을 때와 같다. 반응 완료 시간 또한 고려해야 하는데, 반응 완료 시간은 온도를 올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띠의 끝이 최대 이동 거리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고, 띠의 두께가 얇을수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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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철학(哲學)에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인격(人格)’, 그중 ‘나’를 ‘자아(自我)’라고 한다. 인격의 동일성(同一性)은 모든 생각의 기반이다. 우리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동일한 인격이기에 과거의 내가 한 약속을 현재의 내가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칸트(Kant)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주관’은 인식의 주체를 가리키며, ‘인식’은 ‘앎’을 말한다.
그러나 칸트는 ‘나는 생각한다’, 즉 ‘자기의식’은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한 조건 자체는 무언가가 실제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제함’을 보장하지 않고, ‘영혼이 실재할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칸트는 영혼(靈魂)이 인격이라는 견해를 반박한다. 칸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동일성을 의식하는 것은 인격이다’와 ‘영혼이 자기의식을 한다’라는 두 전제 모두 납득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전제들로부터 ‘영혼이 인격이다’라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전제에 등장하는 ‘의식’은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해 의식한다는 뜻이지만, ‘생각하는 나는 생각한다’와 다름없는 두 번째 전제에 등장하는 ‘의식’은 무언가가 꼭 실재(實在)함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칸트는 통시적(通時的)으로 동일한 인격의 존재를 직접 증명하는 대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라는 가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래야 경험적 판단, 윤리적 판단 등의 생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데, 이러한 구성은 통사적으로 동일한 인격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스트로슨(Strawson)은 자아를 인식하는 방식이 경험적 인식의 방식과 구별된다는 칸트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철학적 상상에 불과하다고 칸트를 비판한다. 인격의 문제에서 신체를 간과한 칸트와 달리, 스트로슨은 인격을 의식과 신체의 복합체(複合體)로 본다. 스트로슨에 따르면, 시공간적 세계 안에서 우리의 신체를 매개(媒介)로 대상이 경험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며 자아에 대한 인식은 경험적 인식들로부터 추상화(抽象畫)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공간(視空間)적 세계에서의 경험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을 뒷받침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기의식도 마찬가지로 경험(經驗)에 의존하기에, 자기의식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는 칸트의 견해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롱게네스(Longuenesse)는 통시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없이는 경험적 인식이 성립할 수조차 없으므로, 자아에 대한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추상화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그는 자아와 인격이 시공간적 세계를 경험하는 인간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롱게네스는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며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율성을 지닌 존재라는 칸트의 견해를 인정한다. 그러나 자율성을 지닌다는 것은 시공간적 세계를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것들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려면 신체가 있고 살아 있어야 하므로, 인격의 동일성으 기준은 각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통시적으로 인식하는 신체라고 롱게네스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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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
법조문으로 구성된 법 규범인 성문법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법 해석이라고 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규범이므로, 성문법을 구성하는 단어나 문장은 그 일상적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리 해석’이 법 해석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무리 해석으로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우면, 그것이 사용된 맥락을 고려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는 ‘체계적 해석’, 입법 과정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파악하는 ‘역사적 해석’ 등의 해석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 예로서 ‘담보’를 들 수 있다. 담보의 일상적 으미는 ‘맡아서 보증함’이고, 이런 의미로 사용된 예로 ‘구조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검사’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성문법 조문에서 사용될 때는 그 맥락을 고려하여 다른 으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담보는 유상 계약의 맥락에서 거래 대상의 값어치를 보장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유상 계약이란 그 당사자가 서로 대가를 주고받을 것을 약속하는 계약을 뜻한다. 유상 계약의 일종인 매매 계약에서 목적물이 계약 체결 당시부터 있던 하자 때문에 대금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면, 매도인은 그 하자 발생의 원인이 무엇이든 담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의 내용은 손해 배상이 원칙이지만, 만약 하자로 인해 매수인이 그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면 매수인은 계약을 파기하고 대금 환불을 청구할 수도 있다. 다만 매수인이 계약 체결 당시 하자의 존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는 담보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
한편, 담보는 채권관 관련된 맥락에서는 채권의 실현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는 의미롤 해석된다. 담보 물권이 그 예이다. 금전 채권은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아야 실현되는데, 채무자가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강제 집행의 목적물이 부동산이면 그 부동산을 경매하여 마련된 경매 대금을 배당받음으로써 금전 채권이 실현된다. 이 때 경매 대금을 배당받을 금전 채권자가 여럿이면 각 채권자는 각자의 채권액에 비례하여 배당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 채권자 중 담보 물권을 가진 자는 경매 대금에서 자신의 채권액부터 먼저 배당받는다.
보증이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 채무를 다른 사람이 대신 이행하기로 하는 것이다. 이때 원래의 채무자를 주채무자, 주채무자 대신 채무를 이행하는 사람을 보증이란이라고 하고, 주채무자가 부담하는 채무를 주채무, 보증인이 부담하는 채무를 보증 채무라 한다. 보증은 담보 기능을 수행하므로 주채무가 소멸되면 보증 채무도 당연히 소멸된다. 보증이 성립하려면 채권자와 보증인을 당사자로 하는 보증 계약이 필요하다. 보증 계약은 보증인에게만 채무를 발생시키므로 유상 계약이 아니다. 이는 주채무자와 보증인 간의 보증의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이 별도로 체결되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보증 계약에 대해서는 보증인 보호를 위하여 법적 규제가 적용된다. 우선 민법에 의하면 보증 계약을 할 때는 일반적인 계약관느 달리 계약서가 작성되어야 하고, 여기에는 보증인의 서명이나 기명 날인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반한 보증 계약은 무효이지만 보증 채무가 이행되었어으면 보증인이 그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 주채무가 주채무자의 사업과 무관한 금전 채무이고, 보증인이 대가 없이 주채무자에 대한 호의로 보증 계약을 할 경우에는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의한 보호도 제공된다. 예컨대 보증 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 보증 기간은 3년으로 간주된다.
채권자가 주채무자에게 주채무의 이행을 청구하지 않고 곧바로 보증인에게만 보증 채무의 이행을 청구한 경우, 보증인은 주채무자가 강제 집행 대상 재산을 보유하고 있음을 채권자에게 증명하여 보증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보증인이 이러한 권리를 포기하로 하는 ‘연대 보증 특약’이 보증 계약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특약을 한 보증인인 연대보증인은, 채권자가 곧바로 주채무 전액에 해당하는 돈의 지급을 요구하더라도 그 이행을 거절할 수 없다.
연대 보증인에게도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적용되는지가 문제가 되는데, 어떤 해석 방법을 따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위 법률 제2조가 그 적용 대상인 보증 계약을 ‘주채무자가 금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그 채무를 보증인이 이행하기로 하는 계약’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그 입법 과정에서 연대 보증인 보호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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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
호네트(Honneth)는 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에서 이뤄지는 인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인정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며, 개인의 정체성은 ‘목적격 나’에 대한 ‘주격 나’의 반응에 의해 형성된다. ‘목적격 나’는 규범에 의해 요구되는 정체성이 추상화된 자아이며, ‘주격 나’는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고유의 자아이다. ‘주격 나’가 ‘목적격 나’를 받아들이면 개인은 ‘목적격 나’를 정체성으로 내면화함으로써 규범의 요구를 수용하고 이 통해 인정을 받게 된다.
‘주격 나’가 ‘목적격 나’에 반발하는 경우 개인은 대안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대안적 정체성은 규범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 때 개인은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부정적 자기의식을 갖게 된다. 또한 규범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이며 지향하기도 하는데, 정체성의 인정을 위한 이러한 저항을 인정 투쟁이라 한다. 인정 투정의 성공은 규범의 변화와 함께 대안적 정체성에 대한 인정으로 이어지며, 호네트는 사회의 발전이 이러한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버틀러(Butler)는 규범이 고정된 실체로서 정체성 형성의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호네트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수행성의 개념을 통해 규범과 정체성의 관계를 설명한다. 수행성이란 수행에 의해 대상이 구성되는 성질이다. 규범이 수행성을 지녔다는 것은 수행이 규범을 구성한다는 것이고, 규범이 수행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수행의 반복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거나 약화되고 사라지는 유동적인 것임을 뜻한다. 정체성은 수행적 반복의 실천이 만들어내는 효과로, 그 역시 수행성을 지닌다. 개인은 규범을 수행적으로 반복하면서, 규범을 실천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고 느낀다.
버틀러에 따르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인간 생존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수행적 반복의 실천은 매번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동일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개인이 이 차리를 의식하고 자신이 배제되었음을 느끼는 순간 생존 투쟁으로서의 인정 투쟁이 시작된다. 이때 인정 투쟁은 규범이 사회 구성원에게 부여되는 동일성에 복종하고자 하는 형태로 나타나거나, 규범을 주도하는 권력이나 규범을 작동시키는 진리 체제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차이를 내세우며 저항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인정 투쟁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정을 위한 것이지만, 인정 투쟁의 성공은 기존의 배제(排除)를 완전히 해체하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또 다른 배제의 잔존(殘存)으로 이어진다. 사회 구성원에게 동일성을 부여하는 규범을 작동시키는 진리 체계는 이러한 규범을 벗어나는 존재를 상정함으로써 동일성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정과 배제의 끝없는 순환을 벗어나기 위해 인정 투쟁의 주체는 규범에 대해 저항(抵抗)하는 동시에 자신의 진리 체제에도 의문(疑問)을 제기해야 한다. 정체성의 형성과 규범의 작동이 수행적 반복을 통해 쌍방향적으로 이루어지며 인정과 배제의 경계를 끊임없이 시험할 때 배제는 최소화되고 상호 인정의 윤리가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버틀러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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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적 형사 절차
국가(國家)는 형사 절차(刑事 節次)를 통해 개인에게 강제력(強制力)을 행사(行使)한다. 형사 절차에서 이뤄지는 체포(逮捕)나 구속과 같은 강제 처분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다. 수사 기관이 강제 처분의 행사를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권한이 남용(濫用)되어 인권 침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따라서 강제 처분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법관(法官)이 발부한 영장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원칙을 영장주의라고 한다.
영장주의에 따라 수사 기관은 강제 처분을 행사하기 전에 법원에 영장(令狀)을 청구해야 한다. 영장은 국가의 권한 행사가 합법적인 것이라는 판단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허가 문서이면서, 기본권 제한의 정당성을 사전에 심사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지(表紙)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영장주의는 개인을 보호하는 예방적 통제 장치로 기능한다.
영장주의가 모든 사안에 항상 적용되진 않는다. 체포는 수사를 위해 개인의 신체를 일시적으로 확보하는 조치이므로 원칙적으로 영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장 발부를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지는 긴급 체포나 현행범 체포의 경우에는 체포 영장이 없이도 강제력 행사가 가능하다. 이때 강제 처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사전 승인이 아닌 사후 검증(檢證)의 성격을 띠게 된다.
구속(拘束)은 체포와 달리 신체의 자유를 장기간에 걸쳐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강력한 조치이므로 예외 없이 영장주의가 적용된다. 과거에는 법관이 수사 기록만을 검토해 구속 영장의 발부를 결정했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수사 기록의 검토와 함께 법관(法官)이 피의자를 심문하여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영장 실질 심사가 도입되었다. 수사 기관이 구속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은 정해진 기일 내에 반드시 피의자 심문을 실시해야 한다. 이는 범죄 혐의의 상당성, 도주나 증거 인멸의 위험과 같은 구속 요건을 검증하는 절차를 강화함으로써 구속 영장이 발부되는 문턱을 과거보다 실질적으로 높인 장치라 할 수 있다.
적부(適否) 심사(審査)는 체포되거나 구속된 개인이 그 처분이 법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한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는 형사 절차 중에 행하여진 강제 처분이 적법한 절차를 따랐는지와 실질적으로 필요했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체포 또는 구속이 이루어진 시점은 이미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강제력이 행사된 상태이지만, 적부 심사는 그 호력(效力)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도록 하여 국가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견제한다.
적부 심사의 청구권자는 피의자 본인뿐 아니라 그 변호인, 법정 대리인, 친족, 동거인 또는 고용주까지 폭넓게 인정된다. 이는 피의자가 강제 처분으로 인해 방어권을 행사하기가 실제로는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하여 주변의 다양한 주체가 이미 행사된 강제 처분의 적법성 다툼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청구서가 접수되면 법원은 48시간 내로 체포 혹은 구속된 피의자를 심문(審問)해야 한다. 심문 과정에는 수사 기관과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고 청구권자의 참여도 가능하다. 법관은 체포 또는 구속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는지, 범죄 혐의의 상당성과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의 위험과 같은 강제 처분의 법률상 요건이 충족되었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증거의 적법성(適法性)과 피의자의 진술 등을 심사하여 강제 처분이 유지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한다.
구속 적부 심사에서는 영장 발부가 적법했더라도 이후 상황에서 피의자의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의 위험이 사라졌다면, 법원은 피의자의 석방을 결정하고 피의자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게 된다. 이는 영장 발부라는 일회적 판단이 강제 처분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제도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즉 강제 처분은 합법적인 권력 행사이지만, 적부 심사는 강제 처분이 이뤄진 이후 그 효력의 유지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라는 점에서 강제 처분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다양한 시점에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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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도파민(dopamine)은 운동 조절, 보상 및 동기 부여 등에 관여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다. 뇌에 존재하는 도파민성 뉴런(neuron)에서 합성된다. 음식이나 약물로 도파민을 섭취할 수 있으나 이렇게 체내로 유입된 도파민은 혈액-뇌 장벽을 통과할 수 없다. 따라서 도파민성 뉴런에서 합성된 도파민만이 뇌의 신경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신경 전달 물질로 작용할 수 있다.
도파민을 비롯한 신경 전달 물질은 시냅스(synapse) 틈을 두고 연접해 있는 뉴런 간의 신호 전달을 매개한다. 이때 신경 전달 물질을 합성하고 이를 시냅스 틈으로 분비함으로써 신호를 전달하는 뉴런이 시냅스 전 뉴런, 분비된 신경 전달 물질을 수용체를 통해 받아들임으로써 신호를 전달받는 뉴런이 시냅스 후 뉴런에 해당한다. 도파민 합성을 시작하는 아미노산인 티로신(tyrosine)이 시냅스 전 뉴런에 해당하는 도파민선 뉴런으로 흡수되면 티로신은 효소에 의해 레보도파(levodopum)로 합성되고, 레보도파는 또 다른 효소에 의해 도파민으로 합성된다. 합성된 도파민은 뉴런 내 시냅스 소포(小胞)에 저장되었다가 뉴런이 활성화되면 시냅스 틈으로 분비되어 시냅스 후 뉴런의 도파민 수용체에 결합함으로써 시냅스 후 뉴런으로 신호를 전달하게 된다.
도파민 수용체(受容體)는 두 가지 계열로 나뉜다. D1 계열은 뉴런내 신호 전달의 활성을 유도하는 흥분성 수용체다. D2 계열은 뉴런 내 신호 전달의 활성을 억제하는 억제성 수용체로 작용한다. 이 중 D2 계열 수용체는 시냅스 후 뉴런뿐만 아니라 시냅 스 전 뉴런인 도파민성 뉴런에도 위치할 수 있다. 도파민성 뉴런에 있는 D2 계열 수용체를 자가 수용체라고 하는데, 여기에 시냅스 틈으로 분비된 도파민이 결합하면 도파민성 뉴런 내 신호 전달의 활성화가 억제되어 도파민 분비가 중단된다. 따라서 도파민성 뉴런에 D2 계열 수용체가 있는 경우에는 도파민성 뉴런 스스로 도파민 분비를 조절할 수 있다. 한편 시냅스 틈올 분비된 도파민 중 일부는 도파민 수용체에 결합하지 않고 도파민성 뉴런에 위치한 도파민 수용체(DAT)에 의해 도파민성 뉴런으로 재흡수되기도 한다. 재흡수된 도파민은 시냅스 소포에 저장되었다가 재사용되거나, 도파민 분해 효소에 의해 뉴런 안에서 분해된다. 다만 모든 도파민성 뉴런에 DAT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DAT가 없는 도파민성 뉴런에서 분비된 도파민은 뉴런 밖에서 분해된다.
도파민이 관여하는 인체의 다양한 작용 중에는 의지에 따른 움직임인 수의적 운동의 조절이 포함된다. 수의적(隨意的) 운동은 기저핵(基底核)에서 선조체와 내측 창백핵을 연결하는 두 가지 신경 경로가 상호 보완적으로 가능하면서 조절된다. 선조체 뉴런과 내측 창백해 뉴런은 억제성 신경 전달 물질인 가바(GABA)를 합성하는 가바성 뉴런이다.
선조체와 내측 창백핵이 직접 연결되는 직접 경로에서는 선조체 뉴런이 활성화되어 내측 창백핵으로 가바가 분비되면 사상으로 연결된 내측 창백핵 뉴런의 활성이 억제된다. 이로 인해 시상으로 가바가 분비되지 않으면 시상의 글루타메이트성 뉴런이 억제 상태에서 벗어나 활성화되면서 대뇌 피지르이 운동 영역으로 흥분성 신경 전달 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분비되어 운동이 시작된다.
반면 선조체와 내측 창백핵이 기저핵의 다른 분위를 거쳐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간접 경로에서는 선조체 뉴런이 활성화되면 내측 창백핵으로 연결되는 뉴런들간의 신호 전달을 통해 내측 창백핵으로 글루타메이트가 분비되어 내측 창백핵 뉴런이 활성화된다. 따라서 이후 직접 경로와는 상반된 작용이 일어나 운동이 차단된다.
흑질(黑質)의 도파신성 뉴런은 선조체로 연결되어 직접 및 간접 경로를 통해 수의적 운동의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 직접 경로의 선조체 뉴런에는 D1 계열 수용체가, 간접 경로의 선조체 뉴런에는 D2 계열 수용체가 밀집되어 있다. 따라서 흑질의 도파민성 뉴런에서 분비된 도파민은 직접 경로를 활성화하고 간접 경로는 억제하여 목표하는 운동의 시작을 수월하게 함으로써 운동을 촉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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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방송을 보다 우연히 20대 청춘의 인터뷰를 보았다. 감성적이고 공감 가는 가사로 대세로 떠오른 가수였다.
자신의 노래를 몇 구절씩 부르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짧지만 인상 깊었다. 왜 다수의 공감을 받는지 이해가 됐다. 그녀의 음악을 좋아하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결국 나는 자기 혐오와 고통으로 압도된 순간에 그 음악을 찾게 됐다.
노랫말은 ‘용서(容恕)’를 말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 대한 용서였다. 연약한 스스로를 꾸짖지 말고 덮어줄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청춘에 대한 위로가 멜로디를 타고 흘러 나왔다.
보는 이도 없었지만 스스로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이미 청춘을 헛되이 흘러보낸 초라한 모습이 너무나 민망했다. 나는 단단한 청춘들보다 더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았다.
비교는 스스로를 좀 먹는다. 멘탈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더욱더 비교에 집착하게 된다. 지금이 그렇다.
나는 늘 또래보다 늦었다. 대학에 가는 것도 취업을 하는 것도 남들보다 느렸다. 인생의 대부분의 순간에 뒤쳐졌고 불안했다.
어릴 땐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버텼다. 중요한건 ‘속력’이 아니라 ‘방향’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땐 그럴만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나니 쉽지가 않다. 오래 쌓인 시간만큼 되돌리는 것도 어렵다는 무력감이 지배한다. 또래들과 나의 격차는 더욱더 아득해져버렸다.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비교를 하고 있는 스스로는 더욱 더 비참해진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리하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그렇게 설득하는 것처럼 들렸다.
용서가 시작이다.